2022년 1월 25일 화요일

보신불 - 믿음의 중심 대상인 무량광의 인격체

    

거룩하신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불과를 증하면

무량광으로 된

자기의 불신이 절대계에 생기느니

미래제가 다하도록 멸도하지 않으리라.

백천삼매

대적정삼매를 자유로이 수용해서

삼신, 삼명, 사지, 오안, 육통 그리고 지혜와 자비

복덕을 구족해 일체에 자재 하느니라

그 우주적인 능력은 무한하여

실로 불가능이란 없노라.

............

보신은

백천만억 화신을 내어

중생을 교화하지만

적정삼매 당처를

한 걸음도 떠남이 없느니라.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불세존 게송 중에서

 

보신불은 32상 80종호를 갖춘 빛의 인격체로서,

우리가 믿고 귀의해야 할 실질적인 중심불입니다.

  보신불이 생기는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보신불은 생전

에 억겁의 수행을 통해 지혜와 복덕을 완성한 붓다의 육신

과 몸 속에 있는 네 개의 빛덩어리 영체가 인因이 되어 생

기며 그 모체인 법신불의 젖을 먹고 자라납니다.

 

 다시 말하면 법신불의 기운을 흡수하여 성장하는 인격적

형상의 불신이 보신불입니다.  억겁 동안 청정한 수행과 착

한 공덕을 쌓아 지혜와 복덕을 완성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생기는 몸입니다.

 

  국가나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지대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훈장을 주는 것처럼, 그런 보상이라는 원리 차원

에서 보신불을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물론 그 차원은 부

처님과 비교를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주에서 이

룰 수 있는 모든 지혜와 모든 복덕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그 완전한 지혜와 인격을 닦은 공덕에 대해 우주 이법이

자연적으로 내려주는 최고의 보상이 바로 보신불이라고 보

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우주 이법이 내려주는

보상을 받기를 바랍니다.

 

  보신불은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인격적 형상을 갖

추고 적멸상으로 나투시는 몸입니다.  무아 속 절대계인 연

화장세계에 불신을 두십니다.  보신불은 머리를 깎고 가사

장삼을 수하시고 활동하십니다.  한 시도 쉴 틈이 없습니다.

불세존께서는 현지사 대법회장에 보신불로 나투시어 설법하

시는 자재 만현 큰스님의 정수리에 앉아 무량광으로 참석

자들의 업장을 씻어주십니다.

 

보신불은 삼신불 중에서도 가장 중심적인 역활을 하시는

지복의 몸입니다.  항상 대적정삼매를 주용하고 계시면서 보

살을 교화하여 붓다로 길러내시고, 제자를 양성하시고, 중

생을 구제하시며, 우주 법계의 평화를 위해 실질적인 활동

을 하시는 부처님이십니다.  모든 부처님들의 불국토에 상주

하시는 부처님이 바로 이 보신불입니다.

 

 남섬부주는 석가모니부처님의 불국토이므로 석가모니부처

님의 보신불이 상주하십니다.  약사여래불은 당연히 당신의

불국토인 동방약사정토에 상주하고 계십니다.  아미타부처님

의 불국토는 서방극락정토이므로 아미타부처님의 보신불은

극락정토에 상주하고 계십니다.

 

   불국토란 붓다 되신 분이 그곳의 백성들을 교화

하여, 궁극적으로는 붓다 만들기 위해 세운 부처님 나라라

고 보면 됩니다.  그러므로 그 불국토에 소속한 백성들은 당

연히 그 불국토를 교화하는 부처님의 보신불을 믿고 귀의

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구촌 남섬부주의 불자들은 이미 2550여 년

전에 멸도하신 육신 부처님에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

다고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부처님을 믿으라는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우리 불자들은 확실하게 구체적으로 실존하

시는 석가모니부처님의 보신불에 귀의하고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도 명명백백한 논리적 귀결입니다.

 

   보신불은 무량광이라고 하는 백종오색광, 억종의

색깔을 가진 아름답고 영롱한 빛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무량광 속에는 무한의 지혜와 무량의 복덕과 가없는 자비

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 분의 붓다는 창조주적 능력을

가집니다. 무량수를 누립니다.  모든 부처님의 보신불은 자

유자재로 신체의 10군데서 무량광을 방광합니다.  무량광은

빛깔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역능力能을 가지며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무량광은 억종의 빛깔로 이루어진 자연계에 없는 빛의

로서 불생불멸, 불구부정이며 한없이 아름답고 영롱하

고 청정하고, 안팎이 없습니다.

 

.번개의 섬광과도 비교 안 되는, 중생이 보면 가루가 되

어벌릴 정도로 상상할 수없는 광도와 강고을 지닙니다.

 

.한량없이 방사해도 끝이 없고 삼천대천세계 어디든 안

비치는 곳이 없습니다.

 

.무량광은 일체의 지혜와 복덕, 자재한 위신력과 신통력

을 지닌 빛입니다.  예를 들면, 지구를 들어 던져버릴

수 있는 힘이 있으며, 중생의 지중한 업장을 소멸할 수

도 있습니다.  또 물 속, 땅 속 깊이 숨어버린 무주고혼

을 찾아낼 수 있는 큰 힘과 신통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무량광으로 창조주적 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아무 것도 창조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것은 우주의 이법에

맡길 따름입니다.

 

오로지 인연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고 교화시켜 붓다 만

드는 것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궁극적인 목적입

니다.  이것을 '일대사인연'이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 중생들은 보신부처님을 뵐 수가 없습

니다.  오직 불과를 이루신 분만 뵙고 대화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너무나 깊은 자리, 너무나 너무나 높은 차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뵐 수 있다 해도, 보는 그 순간 녹아버리고 말

것입니다.  무량광의 엄청난 광도와 강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과를 이루신 분을 통해서 보신부처님

께 공양도 올리고 발원도 합니다.  그래서 불과 이루신 분을

스승으로 삼는 것은 바로 진불인 보신부처님을 모실 수 있

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천만 새에나 한 번 찾아올까 말까한

너무나 큰 축복인 것입니다.  전생에 대단한 선근공덕을 짓

지 않고서는 그런 기회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는 불과를 이룬 두 분의 큰

스님이 계시기에 바로 이 부처님 진불을 모실 수 있는 세

계 유일의 사찰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현지궁은 바로 석가모니부처님 진불인 보신불과 다른 여

러 부처님들의 진불 그리고 금생에 불과 이룬 두 분 큰스

님이 계시기에 '궁宮이라고 합니다.  미륵부처님이 머무시는

곳을 '도솔천 내원궁'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이

런 이유로 영산불교 현지궁을 세계불교 성지 중의 성지라

고 하는 것입니다.  진불인 보신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공

덕은 무한합니다.  진불이기에 기도 성취도 더 잘 이루어짐

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보신불은 붓다만이 볼 수 있고 대화하고

법문을 들을 수 있기에, 붓다가 되지 못한 수행자들을 효과

적으로 지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들

은 무량광을거두어들인 채, 그 광도와 강도를 떨어뜨려 수

행자들을 제도하기에 좋고 편안한 변화신의 모습으로 사바

세계에 오십니다.

 

  외형만 약간 변장한 모습이므로 화신불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보살 정도가 되어야 이 본불의 변화신을 볼 수

있습니다.

 

  몇몇 부처님들의 대표적인 변화신의 모습을 공개합니다.

이것은 영산불교 현지궁 큰스님께서 직접 뵌 모습 그대로

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경전에 있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

이 아님을 밝힙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삼계의 법왕답게 항상 머리는 말끔히

백호친 모습이고, 언제나 가사장삼을 수하시며 보통 8고리

석장을 짚고 다니십니다.

 

  문수보살님은 전통적인 한국의 선비차림을 하시고 오십니

다.  백색 동정이 달린 회색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삿갓  쓰

시고, 머리에 상투하시고, 짚신 신으시고, 등에는 바랑을

메시고 일곱 색깔을 띤 칼 지팡이를 짚고 오십니다.  구레나

룻 수염을 기르셨으며 눈빛이 날카로우십니다.

 

  준제보살님은 전형적인 왕비차림으로 오십니다.  큰 비녀

를 꽂으시고 보라색 바탕에 황금색 연꽃이 수놓인 긴 저고

리와 백색치마를 입으십니다.

 

  관세음보살님은 하얀 실크 한복을 입으신 전통적인 한국

여인상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낭자에 긴 칠보비녀를 꽂으시

고 이마에는 아미타불을 정대한 띠를 두르십니다.  백의관음

이 대표적인 변화신의 모습입니다.

 

  지장보살님은 이마에 띠를 두르시고 회색 두루마기를 입

으십니다.  배가 불록 나온 모습이 특징입니다.

 

  광명불은 불세존의 태자이기에 이마에 세존을 정대한 띠

를 두르시며, 정수리 아래에는 불세존의 태자라는 인印이

찍혀 있습니다.  소매와 바지의 폭이 30cm정도로 좁은 하얀

색 옷을 입으십니다.

 

  자재통왕불은 문수보살의 법왕자이기에 이마에 문수보살

을 정대한 띠를 두르십니다.  정수리 아래에 문수보살 법왕

자라는 인印이 찍혀 있습니다.  백색 동정이 달린 회색 두루

마기를 입으십니다.

 

   우리 중생들의 근기는 너무나 다양하고 소원도

무수히 많습니다.  보신불은 각기 당신의 국토에 상주하시면

서 그곳 백성들을 교화하고 계십니다.  중요한 행사가 있으

면 다른 국토에 가시기도 합니다.

 

물론 관세음 보살님이나 지장보살님 같이 아예 당신의 국

토를 떠나 사바세게에 상주하시면서 중생을 교화하시는 부

처님도 계십니다.  부처님들은 이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쁩

니다.  따라서 보신부처님 한 분으로는 효과적으로 중생을

제도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신불은 그 크나큰 삼매력

으로 필요한 수만큼의 화신불을 만들어 내십니다.  신통으로

만들어 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요해

 

무량광


아!  무량광!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인지요?  동서양

수많은 경전과 수행서적 및 철학사상서 중에서 불교에서만 나

오는 무량광!  큰스님께서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무

량광에 대해서 자세히 그 어느 책에서도 없는 미증유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무량광은 고대 이집트 문명, 유대 신비주

의 카발라, 이슬람 수피즘, 기독교 신비주의 그노시즘, 힌두의

요가, 유교, 도교 등 그 어느 종교, 종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용어로서 불교가 얼마나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종교인

가를 극명하게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특히 보살위에 들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광명을 온 몸의 털

구멍 속으로 받아들이는 경계를 종종 만나게 된다."고 하셨습니

다.  이는 쿤잘리니 요가 체험서나 선도내공

서적들에서 나오는 증험적 경지에 대한 이야기와 중요사

항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즉, 큰스님이 말씀하신 체험 경지와

쿤달리니 요가 및 선도내공의 수행 경지에서 함께 하는 공통점

은 수행의 현상과 신비체험을 통해 체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무량광은 쿤달리니 요가에서 나오는 쉬바 에너지, 그리고

선도내공에서 나오는 원신 보다 훨씬 차원이 높은 에너지

체라는 것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순수하다 못해 너무 밝아서 눈으로 보면 눈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그러한 무량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량광은 불과를 증

하신 수행자에게 현전하고 체들하게 되는 궁극적 실재의 에너

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바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청정한 빛

그 자체로서 대지혜의 눈을 구족한 대성자에게만 보이는 에너

지라고 생각됩니다.

 

부처님의 몸이 무량광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희유한 사실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부처님들이

무아 속 절대세계에 빛으로 계신다."라는 말씀은 한국 불교계가

오랜 동안의 간화선을 비롯한 선 불교에 집착하는 구습을 혁파

하는 매우 강렬한 사자후라고 생각합니다.  아라한위를 얻기 위

해서는 자성과을 보아야 하고열반광을 보면 보살위를

그리고 무량광을 보게 될 때 불위를 증하게 된다고하신 말씀

은 구도자에게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혹한 구도자는 부처님의 무량광에서의 빛과 인간이 만든

전깃불의 빛을 동일시하는데 이는 부처님을 비방하는 행위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어찌 거룩하시고 희유하신 부처님을 전깃

불이나 인간이 만들어낸 빛에 비유해서야 되겠습니까?  큰스님

을 비방하시는 분은 좀 더 신중을 기해서 말씀하셔야 할 것입

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이 전기나 광자와 같은 빛과 같습

니까?  만약 같다면 전기나 광자도 마음과 같이 생명이 있어야

옳지 않겠는지요?  미혹한 구도자들은 한시 바삐 미혹에서 벗어

나서, 하나의 관념적 사유나 집착된 사념에 빠져 큰스님을 비

방하는 일이 없도록 하였으면 합니다.

 

미혹한 구도자들은 큰스님에 대해서 의심이 많습니다.  무릇

수행자가 도를 구하는 데 있어서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하였

거늘, 그렇게 의심만 많아서 어떻게 수행을 하는 구도자라고

자처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의심할 것을 의심해야 하는데

의심할 것은 의심하지 않고 믿어야 할 것을 의심하니 안타깝습

니다.  그리고 의심스러워도 직접 그것을 확실히 깨닫고 이해하

지 않은 선상에서는 말을 자제하는 것이 수행자의 도리라고 생

각합니다.  유대 신비주의인 카발라에서 그리고 기독교 신비주의

인 영지주의(그노시즘)에서도 영혼의 빛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편 성서에서도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 8:12, 9:5)."라고

설파하였습니다.

 

이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그토록 강조한 부처님의

광명세계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부처님의 부량광은

그리스도의 빛의 차원보다 훨씬 우수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

니다.  그리고 그 빛의 세계는 삼매의 힘을 얻게 해주면 적멸과

적정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카발라와 그노사즘에서

말하는 빛은 불가의 아라한위 정도까지입니다.  그 이상이

아님을 구도자들은 잘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대광명의 석가모니부처님은 서양 바이

불에서 최고의 지존으로서 일컫는 하느님의 인격적

실존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서양의 여호와 신으로

알려진 엄하고 심지어 무자비하게 보이는 절대적인 신이

아니라 부처님은 매우 자비로우신 인격적 하느님이라 할 수 있

습니다.

 

도교의 가르침이나 선도내공 쪽에서도 원신을 얻어 공

의 세계를 철견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단을 수련하여

황금빛의 신선체를 얻음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신선

이 되어도 수명이 수천 년 이상 또는 수만 년 이상을 살지

못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원효 스님이 동굴에서 수행을 하고 있을 때 어느 신선이 흉측한 

몰골을 하고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신선들도 수명이 있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

가 알기에 신선의 에너지체와 부처님의 에너지체가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도가의 선지식께서 말씀하시길 신선들은

죽을 때 커다란 슬픔을 안고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는 부처님들은 미래제가 다하도록 사멸하

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법문입니까?  <<21

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불교의 금석문으로서 만고불변

의 진리를 함장하고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83~86쪽